최종편집일 : 2020-05-28

은척 대한청년단(34)

혼란기 반공 청년단체

기사입력 20-02-12 07:03 | 최종수정 20-02-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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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12월 19일 좌익계 청년단체의 통합체인 민주청년동맹(民主靑年同盟)에 견줄 수 있는 연합체로 대한청년단이 결성되었다. 총재는 이승만 대통령이었고, 장택상·지청천·전진한·유진산·신성모·노태준 등이 최고위원회 위원이었다. 전국적으로 200만 단원의 조직체계를 갖춘 청년단체가 되었으나 청년단체로서의 독자적인 역할은 상실한 채 주로 이승만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단체 성격은 ‘우리는 총재 이승만 박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우리는 피와 열과 힘을 뭉치어 남북통일을 지급히 완수하여 대한민국의 국위를 천하에 선양하기를 맹세한다. 민족과 국가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의 도구배를 남김없이 말살하여버리기를 맹세한다.’는 선언문을 볼 때 총재 중심의 반공 단체임을 알 수 있다.


  1950년 1월 내부 분열로 최고위원회가 폐지되고, 단장제로 바뀌어 신성모가 초대 단장, 제2대 안호상, 제3대 김윤근이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청년방위대라는 반군사 조직으로 만들어 향토방위에 투입시켰다.


  이 사진은 6·25전쟁이 발발 이전 1950년 3월 12일 은척 대한청년단 간부가 훈련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훈련 장소는 학교로 보이며, 기간은 1주일이었다. 사진에는 경찰 복장과 유사한 정복 차림 5명과 두루마기 등 평상복을 입은 32명, 멀리 배경에 1명이 있다. 정복 차림은 교관, 앞쪽에 앉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은 지역의 유지나 훈련기관의 간부가 같이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1951년 1·4후퇴 시에는 ‘국민 방위군 설치령’에 따라 이 조직을 국민 방위군으로 재편해 국민 방위군을 조직·이동·훈련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김윤근 단장을 비롯해 군사 실무 경력이 부족한 간부들에게 부여된 과중한 임무는 '국민방위군사건'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낳았고, 그 책임을 지고 5명의 주요간부가 처형되면서 대한청년단은 극도로 약화하였다.


  그 후 제4대 안호상과 제5대 유지원 단장이 재건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1953년 9월 10일 이승만의 명령으로 대한청년단의 해산이 선포되었다. <사진 : 상주박물관>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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