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1-12-04

상주극장(53)

문화 향유의 대명사 극장

기사입력 21-09-15 16:15 | 최종수정 21-09-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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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에 극장이 처음 언제부터 운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극장 운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1933년 2월 21일 부산일보에서 상주의 유력자 우에다 쿠마고로(上田熊五郞)가 3천 원으로 ‘상주 토목파출소’ 옆에 상주극장을 조만간 착공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1946년 1월 18일에는 상주극장이 영남일보에 광고된 것을 보면 어떤 형태의 극장이던지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때 극장이 있었던 ‘상주 토목파출소’는 현재의 ‘상주소방서’ 주변이다. 그 이후 1948년 광고에서는 극장 대표가 박희도(朴熙道)로 나타나고, 1954년 8월 14일에는 재인가를 득하여 운영했다.


  이 사진은 왕산 서쪽 서성동 151번지 일대에 있던 상주극장 정면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극장 2층에 선전을 위한 영화 포스터에는 ‘햇님’, ‘황야(荒野)의 7인(七人)’, ‘축개관(祝開館)’이란 글씨가 돋보인다. 그 뒤쪽에는 왕산의 높은 나무와 극장 왼쪽에 ‘대포집’ 간판이 있어 1960년대의 가장 번화가였던 시내 풍경의 일면을 보여준다.


  대포집 옆에는 1934년 8월 12일에 합명회사로 설립된 ‘최상선주조장’이 위치한다. 사진의 장면은 ‘상주농잠학교’ 학생들이 졸업 기념으로 1964년경에 촬영한 것인데 개관을 축하한다는 글씨와 만국기를 보면 극장을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촬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황야의 7인’ 영화는 1960년 제작된 존 스터지스 감독, 율 브린너가 주연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마을에서 매년 ‘칼베라’란 도적 떼가 나타나 양식을 빼앗아 가자 마을 사람들은 도적 떼와 싸우기로 하고, 7명의 총잡이를 구해 도적을 퇴치하는 내용이다. 영화 포스터에는 율 브린너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 외의 극장은 1962년 6월 8일 함창극장과 명성극장이 인가를 득하여 상주극장과 함께 3개의 상설 극장이 운영되었다. 1968년 9월 23일에는 청리에 청일, 사벌에 은성극장이 가설공연장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라디오와 TV의 보급으로 관객이 줄어들면서 극장 운영자는 심한 경영난을 겪게 된다. 결국은 농촌 지역인 청리와 사벌면의 가설공연장이 1974년 1월 폐장되었다. 그 후에 함창과 상주극장도 폐장되었고, 명성극장은 소극장으로 끝까지 남았으나 폐장되고, 지금은 그 건물 옥상 옆면에 간판만 남아 있다.

<사진 / 농잠학교 앨범>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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