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2-08-13

고녕가야국 왕릉(61)

한반도 최북단의 가야

기사입력 22-04-18 22:19 | 최종수정 22-04-1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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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고녕가야왕릉.jpg

 

1912년 촬영한 함창읍 증촌리 7번지에 있는 고녕가야국 태조 왕릉의 전경이다. 왕릉은 지금보다 봉분 높이가 낮고, 뒤쪽으로 멀리 주흘산이 보인다. 왕릉 중앙에는 ‘가야왕묘(伽倻王墓)’라 새긴 상석을 설치하고, 그 앞에 향로석을 놓았다. 오른쪽에는 중앙에 ‘고녕가야왕지묘(古寧伽倻王之墓)’, 그 옆에 ‘배위묘재동록임좌(配位墓在東麓壬坐)’를 새긴 장방형 묘표를 세웠다. 

 

이 석물에는 능(陵)이라 하지 않고, 묘(墓)의 명칭을 사용했으며, 비문은 고녕가야국 왕의 묘이며, 배위 묘는 동쪽 자락에 있다는 내용이다. 능의 오른쪽에는 모자(母子)가 앉아 촬영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능의 주인공은 함창김씨의 시조 고로왕(古露王)으로써 유래를 보면 1592년에 ‘고녕국태조가야왕릉(古寧國太祖伽倻王陵)’이라 음각된 묘비가 발견되어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晬)와 현감 이국필(李國弼) 등이 확인하여 왕릉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때 발견된 비는 지금 전하지 않는다. 1712년(숙종 38)에 왕명에 의하여 묘비와 석물을 다시 세웠는데 이 사진의 비와 석물은 그때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의 석물은 그 뒤 다시 조성한 것이다. 이 왕릉에서 함창김씨의 후예들은 매년 3월 15일과 10월 1일에 태조대왕 대제를 봉행한다.

 

고녕가야국은 임인년인 42년에 태조왕이 건국하여 156년까지 115년, 2대 마종왕은 丙申年인 156년에 즉위하여 65년, 3대 이현왕은 경자년인 220년에 즉위하여 35년을 재위하고, 갑술년인 254년 7월 신라 첨해왕의 장수 병박(兵薄)이 침공함에 따라 김해로 도읍을 옮겨 213년간 존립하였다는 설과 185년 8월에 신라 벌휴왕이 장사 구도(仇道)를 보내 취함으로써 144년간 존립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 가지 설에서 신라가 취하려면 지형 조건이 사벌국 영토를 통과해서 가능한데 사벌국이 249년에 멸망하였으므로 254년에 멸망하였다는 것이 더 신뢰성이 있어 보인다.

 

고녕가야국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신라가 고녕가야국을 빼앗아 고동람군(古冬攬郡)으로 만들었다’라고 하였으며, 이 밖에 삼국유사,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창현읍지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지금은 가야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학술대회, 선양과 연구회 설립 등 역사 규명과 알리기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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