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정통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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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시내의 중심도로가 조선 시대에 사용되던 도로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 도로를 넓히고 직선화하는 것을 시구개정(市區改正)이라 했다. 시구개정은 도시별로 시행하면서 도심에 있던 읍성을 철거시키는 구실이 되었고, 도로 개설은 시장 군수의 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상주는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번화하였던 현재의 ‘상주상공회의소’ 앞의 사거리 도로를 1914년 12월 12일 완료하고 개통식을 했다. 이 도로가 개설되면서 옛 읍성의 남문에서 북문까지 남북 도로의 거리를 ‘혼마치(本町通)’라 했고, 동문에서 서문까지의 동서 도로의 거리를 ‘태평정통(太平町通)’이라 했다.
이때 도로 폭은 10m(6間) 정도였으며, 남북 도로가 교차하는 ‘十’자형이라 ‘십자 도로’라고도 했다. 도로 개통 후에는 소방조의 화재 예방 캠페인 등 거리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근대화의 표상으로 각종 선전과 홍보에 자주 이용되었다.
도로 좌우에는 나무 전봇대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그사이에는 높이가 낮은 통신주가 서 있는 것을 볼 때 전기와 전화가 대중화되었을 때의 전경이다. 바닥은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고, 도로 옆에는 많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으며, 복식은 두루마기, 갓, 교복, 조끼 등의 차림으로 다양하다. 우측의 은행 앞 전봇대 밑에는 사각뿔 모양의 이정표에 보은, 문경, 김천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한 당시의 도로표지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좌측 뒤쪽으로는 왕산의 수목이 보이고, 내외전기, 금하당시계점 등 현대 문물이 도입된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다. 우측 모서리 건물은 1936년 3월 20일 이나가키 도쿠사부로(稻垣德三郞)가 설립한 이나가키 중제당(衆濟堂) 건물이다. 이 회사는 약품 매매, 농업경영, 토지 매매, 농업자금을 융통하였으며, 간판에는 예천담약(醴泉痰藥), 약국 등의 주요 취급 품목의 선전 문구가 보인다.
이 건물 뒤 높은 양옥은 옛 ‘상산금융조합’ 건물로 보이며, 그 옆에 2층 일식 기와집은 몇 년 전까지도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본정통 거리에 한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과 도로 좌측으로 사람의 이동이 많은 것으로 보면 왕산 동쪽에 버스정류장이 들어서 운영하고 있을 시기로 추측된다.
사진 촬영 시기는 전기, 전화, 자전거, 버스, 시계 등 교통과 현대의 각종 매체가 대중화되고, 복식이 단순화된 것을 보면 1940년 이후의 전경으로 추측된다. <사진 : 상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