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댕이 고개(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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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면 상촌리와 구잠리 경계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서 불현, 불당현, 부치댕이, 부치대이, 부치당 등으로 불린다. 영남대로를 따라 부산에서 낙동강을 건너 북쪽 서울 방향으로 올라오다가 첫 번째 맞는 해발 96m의 고개로 이 고개를 지나야만 문경새재 즉 조령을 넘을 수 있었다.
한자어로는 ‘불현(佛峴)’이라 하고, 보통은 ‘부치댕이’ 고개로 불리며, 교통수단이 현대화되기 이전에는 주요한 이정표 지점으로 고지도에는 꼭 표기되었던 지형지물이다. 또 이름과 같이 서울 가는 길목으로 고개에 불상이 있어서 과객 등 길손이 소원을 빌었다고 하나 지금은 불상이나 불당의 흔적은 찾을 수는 없다.
지금은 숲속에 비석군이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세울 당시에는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고, 고개를 넘으면서 잠시 쉬던 곳으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이기에 보통 이러한 고개에는 서낭당이나 비석군이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의 상주 목민관이었던 조영화 목사의 선정송덕비, 유언현 목사의 영세불망비와 이관하 군수의 불망비, 박정준 이방의 청백비가 세워져 있다. 이 4개의 비 중에서 유언현 목사의 영세불망비가 가장 크고, 자연석에 큰 눈과 긴 송곳니 등 해학적으로 거북 머리를 조각한 대좌는 수작으로 눈길은 끈다.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에서는 1913년부터 1924년까지 전국의 광산물을 조사하고 분석했는데 상주는 1913년 조사를 마쳤다. 이 고개에도 금 함유율이 0.00618%로 상당히 높은 수치의 광상이 있었다. 상주에서 금 함유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내동, 내남, 장천면 경계에 있는 식산(食山)의 광맥으로서 0.01122%이었다.
이 사진은 1913년 금 광맥을 조사할 때 촬영한 사진인데 낙동강 쪽의 구잠리에서 상촌리 방향 부치댕이 고개를 중심으로 촬영했다. 주변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고, 고개까지 좁은 비포장길 옆에 장꾼이 지게 3개에 고리짝과 옹기 단지 등의 짐을 잔뜩 실어 놓고 고개를 넘기 전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광경이다.
지게에 짐을 묶은 노끈에는 막대기를 이용해 신속하고 단단하게 짐을 조르는 옛 장꾼의 매듭 방식이 이채롭다. 도로 왼쪽은 다랑논이 층층이 조성되어 있고 오른쪽은 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도로 옆에 깊게 팬 도랑도 보인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위쪽에 아낙네 둘이서 밭일을 하거나 쉬고 있는 듯한 모습도 멀리 보인다. 이 도로는 국도가 되고 금광이 개발되면서 1916년부터 현대 도로로 변화가 시작된다.
<사진 : 朝鮮鑛床調査報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