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정사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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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503m)의 북쪽 자락으로 논실 마을인 외답동 167-1번지에 있는 ‘천운정사’의 1984년 전경이다. 산자락 비탈진 자연 그대로 경사를 이용해 정사, 마당, 작은 못을 3단으로 길게 조성한 정통정원으로서 지형에 잘 맞추어 독특하며, 계획적으로 조성했다.
정사는 ‘ㄱ’자형으로 방 2칸, 마루 2칸, 정지 1칸이며, 마루 부분은 높은 장대석을 설치한 누마루 형태를 갖추고 있다. 방과 정지 부분은 팔작지붕, 누마루 부분은 박공지붕으로 팔작의 안채에 박공의 정자가 붙어 있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기단은 자연석을 경사면에 따라 쌓았으며, 초석은 건물 규모에 비교해 큰 자연석을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 이는 마루 아래 기단에 자연석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볼 때 자연 지형과 바위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누마루 하부는 원래 개방되어야 하나 지금은 기단으로 막혀있어 안타깝다.
기둥은 방주이며, 방은 온돌, 마루는 우물마루로 설치하고, 창호는 세살창이나 정지에는 널판문이 설치되어 있다. 가구는 납도리 3량 가로서 기와의 끝단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내부에는 청오헌, 천운당, 복소실, 양호료, 풍월루가 있고 루 아래에는 조감당과 양어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조감당 자리에 방형의 못만 조성되어 있다.
이 정사는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이며, 성리학자인 식산 이만부가 1697년 서울에서 내려와 1700년경에 건립한 정사로서 독서와 교육, 선비의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천운’이란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 시구 중에서 하늘의 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오고 간다는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인용하여 ‘천운당(天雲堂)’이라 당호를 정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 이름도 ‘천운정사’로 지정했으나 원래 이름은 ‘식산정사’이다.
식산의 ‘노곡기’에 이 정사의 건립 의지가 담겨 있으며, 저서는 ‘식산집’, ‘사서강목’ 등 많은 서책이 전해지고, 식산집 목판이 북장사에 보관되어 있다. 특히 조성 당시의 전경과 규모, 용도를 살펴볼 수 있는 ‘누항도첩’이 전한다.
이 화첩은 1714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식산정사도를 비롯한 연거, 회우, 의장, 종수, 과농, 수조, 탁천의 일곱 점이 주제의 글과 함께 화첩으로 꾸며져 있다. 식산은 정조 때 근암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전적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지금도 정사의 뒷산이 식산(息山)으로 불리고 있다. <사진 : 상주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