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4-09-12

1920년대의 번화가 (77)

기사입력 23-07-12 09:03 | 최종수정 23-07-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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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앙산에서-본-시가_수원광교박물관.jpg

 

왕산 위에서 인평동이 있는 백원산 방향으로 보면서 시내 중심지를 촬영한 모습이다. 본정통(本町通)과 태평정통(太平町通)이 교차하는 이곳이 당시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멀리 좌측에 높은 산은 식산(息山), 중앙에는 인평동 일대의 백원산(白元山)이고, 그 아래에 상주 앞들이 펼쳐져 있으며,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깝게는 상주목 옛 관아에 있었던 고목들이 여러 그루 남아 있고, 작청으로 사용되었던 ‘ㅁ’자형 건물이 선명하다. 그 뒤쪽으로는 관아의 부속시설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목조의 기와집이 여러 채 있다.

 

사진 중간 위치, 지금의 상주경찰서 자리에는 상주목의 객사인 상산관(商山館)이 있다. 그 앞으로 중문만 남아 있으며, 문루인 진남루는 이미 철거되고 없다. 객사 북쪽으로는 팔작지붕의 기와집이 보이는데 이 건물은 옛 교방청 건물로서 우체국으로 사용했으며, 1926년에 신청사 신축을 위해 철거했다. 

 

객사 우측으로는 2층 양옥의 ‘조선식산은행 상주지점’ 건물이 보이는데 이 은행은 ‘경상농공은행 상주지점’으로 발족하였고, 1918년 6월에 조선식산은행 설립과 동시에 이에 흡수되어 ‘조선식산은행 상주지점’으로 개칭했다.

 

사진에는 건물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으나 옛 교방청과 상산관 사이에는 1915년 동서로 태평정통, 남북으로 본정통을 개통하고, ‘조선식산은행 상주지점’ 앞 양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을 ‘십(十)자 도로’라 불렀다.

 

사진 앞쪽에는 상주목의 동헌이 있던 곳이다. 동헌은 1901년 이한응 군수 재임 때 실화로 소실되어 제금당을 동헌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사진에 공터로 보이는 부분이 소실된 동헌 터로서 1909년 이방청을 신축했고, 그 앞쪽으로 1921년 경찰서를 신축했다. 

 

동헌 터에는 건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모습이다. 기초공사가 완료되었고, 통나무와 각재, 기와 등 건축 자재가 좌측 담장 밑에 적재된 것을 볼 때 골조 공사를 준비 중인 모습이다. 이 건물은 동서 방향으로 작청과 거의 평행한 위치에 건립되고 있다. 

 

이 위치에 있었던 경찰서의 이력을 보면 1920년 12월 31일 사업비 16,900원으로 착수하여 74.5평의 청사와 창고 8평, 기타 부속 건물을 1921년 6월 12일 준공했다. 따라서 이 사진은 1921년 초에 촬영된 상주경찰서 공사 현장과 상주목 관아 일대의 모습이라 하겠다. <사진 : 수원광교박물관>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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