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 바퀴(22) 꼭지 수선집
본문
누가 뭐래도
이 좁디좁은 서너 평 공간이
저 키 작은 아지매의 완벽한 아지트이다
남편보다 더 믿음직한 미싱을 왼종일 끌어안고
각처에서 물고 온 옷가지들을 해석하고 풀어낸다
돋보기 너머 구름 낀 눈 고쳐 뜨고
박음질로 그려가는 반듯한 새 세상
늙은 여자들이 알록달록한 마스크로 가린 입 맞대고
전기장판에 수다를 뻥튀기하는 사이
닳고 헤어진 소매와 바짓단이 어느새 깜쪽같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골무가 기억하는
저 바지런한 아지매의 삶의 궤적
가는 실처럼 아슬아슬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쇠줄처럼 질기고 탄탄하다
<시작 메모>
시장 안 좁은 공간이 이 아지매의 생활터전입니다.
날만 새면 주변 아지매들이 갖은 옷가지들을 가지고 와서
수선을 맡기고 또 수다를 떨고 가는 사랑방입니다.
갈 때마다 웃음꽃이 만발하는 것을 보고 저도 덩달아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춘하추동 미싱 앞에서
가슴속 희노애락을 녹여내며 살아온 세월이 어언 이십 년입니다.
돋보기 안경 너머로 이제는 실이 잘 안 보이신다며 투정을 하십니다.
뭉툭한 골무가 기억하는 그녀의 삶은
거칠어진 손끝 만큼이나 힘들었으나 잃지않는 웃음처럼 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