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6-02-18

시장 한 바퀴 (26) 선산 장날

기사입력 22-08-07 21:42 | 최종수정 22-08-0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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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산 장날


 

겨우내 참았다가

와락와락 쏟아지는 햇살처럼

마스크 고쳐 쓰고 뛰쳐나온 사람들

봄옷과 봄나물에 얼굴을 묻는다

 

오른쪽 올라가는 인파와 왼쪽 내려오는 인파 사이

소쿠리를 밀고 기어가는 검은 물체, 누구신가

아래로 향한 얼굴이 바닥과 붙어 있다

 

세상의 모든 빛이 비껴가는 저 육신

바뀌지 않는 한 계절 겨울과 사투를 벌이는 중

간간이 떨어지는 동전소리마저 애처롭다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는 노랫소리

톤 높은 트로트에 속절없이 파묻히고

꽃 그림자 거느린 사람들 꼬리 긴 고무옷 밟고 지나간다

 

사방의 캄캄한 벽 속에 갇혀

주구장창 바닥만 읽는 생이 내 안으로 들어온 후

장날의 축제는 서둘러 끝이 났다


 

 

<시작메모>

선산도 상주처럼 2일, 7일이 장날입니다. 우연히 들른 장에서 옛날 시골장 같은 풍경을 보았습니다. 장닭과 토끼도 새 주인을 찾느라 나와 있고 먹거리는 얼마나 많던지요. 겨울을 보내는 비가 오고 난 뒤라 화창한 날씨에 봄옷과 각양각색의 꽃들이 손님들의 눈을 호사스럽게 해 주었습니다.

 

그 왁자한 좁은 시장길에 소쿠리를 밀며 기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반신을 고무로 둘렀는데 꼬리가 길어서 사람들이 밟고 지나 다녔습니다.

소쿠리에는 동전 몇 닢뿐, 코로나로 심리가 위축된 사람들의 손길은 더 뜸해졌습니다. 벚꽃이 아무리 환하게 피었어도 봄을 느끼지 못하고 혹독한 겨울만을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에서 소외된 그들에게 마음 한 귀퉁이 내어주는 봄날입니다.

 

 

이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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