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 바퀴 (29) 세느제과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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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제과를 지나며
이 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문득 와서 곁에 앉는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오월의 나무처럼 푸른 젊은 날의 언덕에
빵과 단팥죽이 놓여있었겠지요
계피향에 물든 팝송가락이
뾰족구두 아가씨들의 치맛자락 자꾸만 잡아 당겼을까요
미라보 다리 아래 주홍빛 노을 강을 만나고
캐롤송이 팝콘처럼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십이월엔
흰눈 수북한 얼음 강도 만났습니다
수없는 꽃들이 피어나는 시간
약간의 불안함과 내일의 불확실 속에서도
생의 벅찬 풍경들을 왼쪽 가슴에 꾹꾹 심었을까요
미라보 다리 아래 강물은 바다로 바다로 흘러가고
우리들 사랑의 길도 희미하게 지워졌지만
이 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문득 와서 곁에 앉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영영 이승을 떠나
내 가슴에 불멸의 꽃이 된 이름도 있습니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의 시구(詩句)
<시작 메모>
시장 안쪽에 세느제과점이 있습니다. 40년 전통이라 하니 사장님 내외분은 빵 굽는 일을 천직으로 아시고 혼신을 바치신 분들입니다. 지금처럼 커피숍이 없던 시절, 이곳에서 친구들과 빵과 단팥죽을 먹으며 하하호호 젊음을 만끽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이 가게 앞을 오가며 ‘미라보 다리 아래...’ 시구를 흥얼거리며 옛 추억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요즘은 찹쌀떡을 사러 자주 가는데 겨울밤 초가집 뒷방에서 듣던 “찹쌀 떠어억~”그 굵고 짧은 외침도 각인된 그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강물이 흘러가듯 세월은 머무름이 없고 나는 이승 한 구석 유한한 목숨으로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