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 바퀴 (31) 손톱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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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깎이
시장 골목 한구석
손톱깎이 귀이개 검정 고무줄 애지중지 품에 안고
낡고 낡은 잡화 매대 오수에 드시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저 잡다한 것들에 자주 발목 잡히는데
근사한 포장 안에 들어있는
매끈한 몸매의 손톱깎이 물리치고
오래 전부터 내가 애용하는 그것은
오매불망 이 시장표
절대 길어서는 안 되는 손톱
어느 날 문득 나뭇가지 치듯 잘라내고 나면
나는 머릿속까지 둥둥 가벼워지는 것이다
손톱이 자라나면
알 수 없는 근심의 싹들도 함께 자라나
숲이 될 때가 있다
몸의 나사들이 하나 둘 풀려 나간 할머니
늙어가는 매대 옆에 누워 한몸 이루고 있어
한 뼘 이승의 자리 좁지만 포근해 보이는데
나의 손톱은 여름날 수풀처럼
캄캄한 밤중에는 더욱 쑥쑥 자라나
할머니의 누옥(陋屋)을 자꾸만 생각하는 것이다
<시작 메모>
보잘 것 없이 사소하지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시장 안에 있는 잡화 매대에서 가끔씩 구입하는 손톱깎이는 제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입니다. 손톱이 조금 길어 나오면 과다하게 신경이 쓰이는지라 가게, 집 책상, 서랍 등 곳곳에 놓아두었지요.
할머니의 매대가 다이소나 천냥 샵에 밀려 인기를 잃었지만 할머니와 평생 동고동락해 온 삶의 터전입니다. 매대도 사람도 조금씩 캄캄한 세월 속으로 함몰되어 갑니다.
장맛비에 수풀 자라듯 여름이면 손톱이 더욱 자라나 할머니의 매대가 짠하게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