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통학의 추억, 농잠학교 기차 통학생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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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일 수호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조선 침략을 위해 1885년부터 철도 노선에 대한 사전 답사를 시작하였고, 경부선은 5차를 실시했는데 1차는 1892년 8월 부산 주재 무로다 영사 주관으로 시작됐다. 이때 노선은 서울(남대문)~용인~죽산~청주~문의~상주~대구~밀양~부산을 잇는 36개 정차장을 계획했다.
이 노선은 조선의 교통 대로를 따라 상주를 통과하는 계획이었으나 1894년 11월 일본군부의 2차 답사에서 지금의 추풍령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상주는 국토의 교통 중심에서 벗어나 발전의 기회를 잃게 된다.
경북선은 1916년 무렵부터 태동했다. 김천에 거주하는 일본 상공인들이 김천과 상주의 유지를 규합해 김천~상주 간 조선 경편철도 건설을 조선총독부에 진정했다. 1919년에는 김천의 와타나베(渡邊榮太郞)가 총독부에 영주~상주~김천~진주~삼천포를 잇는 노선으로 ‘조선 산업철도 주식회사’ 설립 인가를 받았다. 사장은 후지야마, 이사는 와타나베 등으로 구성해 처음에는 김천~영주 노선으로 추진하다가 1920년에는 안동까지 종점을 확장했다.
노선 실측은 완료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적인 공황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 추진을 못 하다가 1922년 4월 15일 기공을 하고, 1923년 9월 1일에는 사설 철도회사 합병 계획에 따라 ‘조선철도(주)’에 합병되었다.
착공 2년 후인 1924년 10월 1일에 김천~상주 간 36㎞, 12월 25일 상주~점촌 간 23.8㎞, 1928년 11월 1일 점촌~예천 간 25.5㎞, 예천~안동 간 32.8㎞는 1931년 9월 1일 개통되었다.
경북선이 개통된 이후에는 경북 북부지방의 기간 교통로가 되었으며, 여객과 화물의 혼합 열차로 운행되었다. 김천~점촌 간 운행 횟수는 1925년 여객, 화물혼합 5회와 부정기 1회, 1930년에는 혼합 5회, 1936년에는 여객 2회, 혼합 4회로 운행했다. 그러나 1937년부터는 사설 철도의 국가 매수가 추진되면서 1940년 3월 1일 국가에 매수되었다.
이 사진은 김천, 공성, 청리에서 상주까지 기차로 ‘상주공립농잠학교’에 통학하면서 1942~1944년경에 역무원과 함께 기념 촬영한 것이다. 위치는 승강장 기둥머리 형태가 보이는 것을 볼 때 점촌에서 김천 방면으로 상주역에 정차 중인 기관차 앞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 New York, Kim Shinh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