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삼한시대 5대 저수지, 상주 공검지(84)

기사입력 24-01-12 12:09 | 최종수정 24-01-12 12:09

본문

84 공검지.jpg

 

공검지는 공건, 공권, 공골 등 이름이 많다. 공건(公建)은 ‘곤고다’의 경상도 방언인 어떤 물체를 ‘떠받치다’, ‘가두다’는 뜻이다. 즉 ‘공갈못’이란 둑을 쌓을 때 나무로 ‘곤고아서’ 그 속에 흙을 다져 넣는, ‘공글리는’ 작업으로 물을 가두어 완성된 못(池)을 말한다. 발음할 때는 ‘공글린 못’을 축약 형태로 ‘공글못’, 이것을 다시 ‘공갈못’으로 굳어지고, 한자어로 기록되면서 ‘공검지’가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못은 세 마리 용이 싸우는 쌍용연투(雙龍戀鬪),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용경설화(龍耕說話) 등 12개의 설화가 전해오며, 연밥 따는 채련요(採蓮謠)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또 문교부 저작의 국사 교과서에 삼한시대 저수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고려 명종 때에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수의 호수로서 이름이 높았다. 1897~1906년 사이에 개간으로 못의 기능을 잃었고, 1959년에는 상류에 ‘오태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농경지가 되었다.

 

그 후 옛 명성 회복과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1993년부터 확장하여 지금은 3만 6천 2백여 평이 되었고, 2011년에는 ‘국가 논습지’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둘레가 1.3km이나 원래는 13km 정도로서 2004년부터 발굴조사를 하여 옛 제방 기저부의 연약 지반을 보강하는 목재 시설층, 부엽 공법 등 옛 토목 시설과 공법이 발견되었고, 7세기 후반의 수리 시설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 사진은 공검면 양정리 산5번지 일대에서 북서쪽의 율곡리 방향으로 촬영한 것이다. 못 안에는 나룻배 2대가 보이며, 멀리 오봉산으로 추측되는 산과 그 아래 산자락과 율곡리 앞에는 물이나 얼음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또 율곡리 동쪽에 함창 방향으로 연결되는 신작로와 양정교 자리에 하천을 건너 율곡으로 들어가는 흙길의 모습이 뚜렷하다. 양정리 마을은 대부분 초가집이며, 일식 기와집과 함석집도 있다.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못 기능이 상실된 이후부터이다. 1951년에는 정기시장이 개설되었고, 1959년 오태저수지가 준공되었으며, 공검면사무소는 부곡리에 있다가 1980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이러한 변천 정황은 항공 사진에서도 확인되는데 1954년 3월에는 못과 도로 옆으로 10여 호, 1969년에는 90여 호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양정리가 이 사진과 같이 장옥 형태의 마을이 형성된 전경은 1969년 이전의 모습이라 하겠다. <사진 : 상주박물관> 

김상호 기자
<저작권자 © 뉴스상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영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