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단교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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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남대로 낙동진(洛東津)이 있던 곳이다. 교통량이 많아 상주시 낙동리와 의성군 낙정리에 각각 작은 배와 큰 배를 대어 놓고 양쪽에서 운행했다. 하루에 몇 차례씩은 버스나 화물차도 배를 이용하여 낙동강을 건넜다.
육상 교통이 발달하고, 자동차가 점차 고속화되면서 낙동강으로 분단된 동서 연결을 위한 교량 건설의 숙제는 선거 때마다 나오는 상주, 의성 지역에 약방 감초 같은 공약이었다.
1966년 12월 15일에는 낙동진에서 12㎞ 하류인 구미 선산읍 생곡리와 도개면 신림리를 잇는 일선교(一善橋)가 놓였다. 이곳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으로 교량 표석 글씨도 손수 썼고, 준공식에도 참석했다. 이 다리 개통에 따라 국토 교통은 흐름도 낙동강 하류로 옮겨가는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낙동진에 교량 건설을 더욱더 부추기면서 1967년 3월 25일에는 강 옆에 지역 주민이 운집한 가운데 ‘낙단교 가설 기공식’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교량 건설이 중단되었고,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교각 몇 개씩만 설치했다. 나중에는 6개의 교각만 세운 상태에서 20여 년간 완공되지 않아 ‘선거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5년 2월 12일 제12대 김천, 금릉, 상주지역의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에 고(故) 전두환 대통령의 동서(同婿)인 김상구씨가 당선되면서 낙단교 건설은 급속히 진행되었다. 의원 임기가 1985년 4월 11일 시작되는데 이 교량은 1985년 4월 23일에 착공이 된다. 즉 당선 이전부터 공약으로 설정하고,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교량 건설도 빠르게 진행되어 1년 4개월이 지난 1986년 8월 30일에 완공한다. 지금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군사정권 시절의 국정 연고(緣故) 운영을 엿 볼 수 있는 역사의 한 단락이다. 교량은 길이 434m, 폭 10m로서 상주 낙동면과 의성 단밀면의 첫 머리글자를 따서 ‘낙단교(洛丹橋)’라 명명했다.
이 사진은 1986년 9월 16일 교량 준공과 함께한 개통식의 한 장면이다. 고(故) 전두환 대통령과 그 오른쪽에는 김상구 국회의원, 이상배 경상북도지사와 주변에는 지역의 주요 인사들과 경호원이다. 오랜 기간 지역민의 염원을 대변하듯 이때 행사 아치 구조물에도 ‘누대의 숙원 낙단교 준공’이란 문구를 적어 놓았다.
올해는 대통령과 지방 선거가 있다. ‘선거 다리’ 공약이 아닌 실현 가능한 공약을 기대해 본다. <사진 : 尙州 제3호(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