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금융조합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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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조합 제도 시작은 1907년 5월 30일 ‘지방 금융조합 규칙’이 제정, 공포되면서부터이다. 1914년 5월 22일에는 ‘금융조합령’으로 이어지고, 그 후 여러 번의 개정을 거치게 된다. 운영 체계는 ‘식산계’, ‘금융조합’, ‘금융조합 연합회’로 연결되어 있으며, 식산계는 조합, 조합은 연합회에 각각 가입하여 조합의 제반 사항은 연합회를 중심으로 운영하게 된다.
조합은 조선총독부의 보호와 장려로 초기 10개 조합, 조합원은 5천 명이었던 것이 1937년경에는 709개 조합, 209개 지소, 조합원 516만 명으로 발전하고, 1945년에는 912개의 조합으로 확장되었다.
설립은 1907년 8월 ‘광주지방금융조합’ 설립이 그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상주에서도 1907년 9월 24일 박정준(朴正準) 조합장과 타케다 햐쿠조오(武田百藏) 이사가 ‘상주지방금융조합’으로 처음 설립을 설립한다. 그 이후 1919년 함창, 1922년 상산과 화령, 1925년 옥산, 1928년 낙동 금융조합이 차례로 설립된다. ‘상산 금융조합’ 본점은 성하리에 두었고, 조선인이 많이 이용했다. 1937년에 조합원은 3,034명으로 6개 조합 중에서 가장 많았으며, 규모는 예금은 13만 원, 대출은 32만 원으로서 함창보다는 적었다.
1947년 8월 31일에는 ‘상주금융조합’에서 ‘상산금융조합’을 합병한 후 함창, 화령, 모동, 낙동, 옥산 금융조합은 지소로 했다. 이때 규모는 조합원 23,500명, 예수금 1,806만 원, 대출 708만 원이었다. 1956년 5월 1일에는 주식회사 농업은행이 창립되면서 금융조합은 해산에 이르게 된다.
건물은 2층 벽돌집으로서 1층은 은행 형식이라 층높이가 높다. 전면(facade) 현관 좌우에는 고대 그리스의 도리스양식을 본뜬 기둥을 좌우에 세우고, 입구 난간 벽에 ‘상산금융조합(商山金融組合)’의 간판을 붙였다. 그 위쪽과 층 사이 외벽에는 문양을 조각한 석판을 붙여 외형을 고급스럽게 치장했다.
현관 오른쪽에는 부흥저축채권(10엔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부흥저축채권 제1회 발행이 1924년 9월 1일이므로 이 사진은 1924년 이후의 사진이라 하겠다. 안내판 옆에는 우록표(羽鹿票) 성냥 상자가 쌓여 있다. 현재 위치는 성하동 11-2번지 일대로 추측된다. <사진 : 상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