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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普光) 강습소(41)

기사입력 20-09-14 18:41 | 최종수정 20-09-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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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7조와 부칙으로 된 ‘사찰령’이 1911년 6월 3일 공포되었다. 이 영에 따라 한국불교는 조선총독부 감독하에 예속되었으며, 교단은 30 본산으로 나누어졌다.

 

 1924년에는 화엄사가 승격되어 31 본산이 되었고, 모든 사찰의 의식, 인사, 재정 등의 권한이 침해를 받게 되었다. 이때 상주는 문경 김룡사(金龍寺) 말사로서 황령사, 남장사, 관음전, 중궁암, 북장사, 갑장암, 용흥사, 동해사, 왕비암, 청계사, 서산사, 청룡사의 12개 사찰이 있었다.


  1921년 말에는 본말사 주지와 협의원이 협의회를 구성하여 상주에 교육 사업을 하기로 하면서 1922년 냉림 포교당에 ‘보광강습소’를 설립했다. 위치는 성모병원 북쪽 냉림동 335번지 일대로 보이며, 보광(普光)이란 ‘빛이 온 누리에 비친다.’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불을 모신 건물을 보광전(普光殿)이라 하듯 불교 용어이다.


  처음에는 공립보통학교에 준하는 6학년 제로 운영되었으며, 교원은 박동화 등 3명이었고, 재정은 불교단체에서 맡았다. 곧이어 무양리로 옮겨 2천여 평의 대지에 교사를 건립했다. 1924년 예산은 4천 5백 원으로 1925년에는 4학급에 학생 수는 220명으로 늘고, 교실, 비품을 완비했다. 그러나 운영 경상비는 매년 4천여 원이나 되었고, 그중 3천 원은 김룡사 본말사가 부담했으나 사정으로 인해 전부를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그중 얼마를 보조받기로 하고, 장차 보명학원과 합병할 계획도 했다.


  1926년에는 김룡사 단독경영으로 경영 주체가 바뀌어 본사 재정 부담이 커졌고, 학생 은 160여 명이었다. 경영 문제는 더욱 악화하여 1927년 3월에는 결국 본말사 주지 총회에서 강습회 폐지가 결의되었다.

 

  당시 지역 유지였던 박동화, 박정현, 조경래 등이 사찰과 교섭을 했으나 실패하였고, 강습소를 계속 운영하기 위해 각 사회단체와 학부형회에서는 ‘강습회 폐지 반대문’을 사찰 측에 보냈다.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임시총회에서 재적 학생만 졸업시키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보명학원에 합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은 제1회 졸업 기념사진으로 학생이 흰색과 검은색 두루마기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1928년경에 촬영된 것이다. <사진 : 상주박물관 소장>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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