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기념 운동회(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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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잠학교는 1921년 3월 12일(조선총독부 고시 제417호) ‘상주공립농잠학교’로 설치 인가를 받았다. 학생은 심상소학교나 보통학교(6년) 졸업자로서 12세 이상인 자가 입학 대상이었다.
사진 하단부에는 ‘1945(4278).10.16. 優勝’으로 기록되었던 것을 지우고, 그 위에 ‘4278(1945).10.16(해방 기렴 운동회) 우승’이라 기록했다. 이 사진은 소장자의 부친 사진으로 부친은 앞에서 두 번째 줄 중앙에 제복 입은 사람 오른쪽에 있는 분이다. 이날에는 학교 내 양어지의 동산, 냉장고 위 등 여러 곳에서 우승 기념으로 촬영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2개월이 되는 때 처음 맞는 운동회이기 때문에 ‘해방 기념 운동회’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해방’을 강조한 것 같다. 모두 ‘N’자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는데 ‘N’자 의미에 대하여 소장자는 '농잠'을 한글로 표기한 ‘Nongjam’의 첫머리(initial) ‘N’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다른 사진에 농잠학교를 ‘sangju nongjam middle school’이라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우승기를 중앙에 세우고, 신장 크기 편차가 큰 33명 학생이 촬영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그때는 지금 같이 의무 교육이 아니고, 가정형편에 따라 소학교나 보통학교를 입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학교나 보통학교를 졸업 하더라도 바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경제 상황 등 가정 여건이 될 때 진학이 가능해서 입학 대상은 12세 이상이지만 실제는 나이의 편차는 상당히 컸다. 또한 학생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영양 공급 상태에 따른 영향도 신체 크기에 큰 원인이 되었다.
학생들의 복식을 보면 조끼 러닝셔츠와 비슷한 상의는 운동복으로 보이며, 몇몇 학생이 입고 있는 옷깃이 있고, 팔을 걷어 올릴 수 있는 복식이 여름철 교복으로 보인다. 운동장에는 만국기도 달고, 배경에는 단발머리 어린이들과 옛 농잠학교의 플라타너스, 교사 건물들이 함께 촬영되었다.
나무 밑에는 비닐 천막이 나오기 전까지 사용되었던 ‘공(工)’자가 찍혀 있는 면(棉) 천막 2개를 치고 있는데 교사나 지역 유력인사의 내빈석으로 이용된 것 같다. 이 위치에는 지금 상주시청과 중앙초등학교가 있다.
<사진 ⓒ 미국 New York City, Shinhwa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