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진영(鎭營)의 흔적(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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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시내는 시구개정(市區改正)을 하면서 도로의 명칭도 상주 읍성 남문을 기준으로 남북 도로를 본정(本町), 그 좌측을 서정통(西町通), 우측을 동정통(東町通) 등으로 정명개정(町名改正)을 했다. 이러한 명칭은 행정 도로 이름이고, 실제는 읍성 사대문을 기준으로 ‘동문걸’, ‘남문걸’, ‘서문걸’, ‘북문걸’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거리 이름이다.
이 사진은 서문통(西門通), 즉 서정통의 전경을 촬영한 사진이다.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가 넓게 개설되어 있으며, 도로 위에는 지게를 지고, 자전거를 타고, 소(牛)에 질매(길마)를 얻는 등 당시의 운반 수단들이 보인다. 사람들의 복식도 두루마기에 갓을 쓴 사람, 중우 적삼 차림 등 다양하다. 도로 양쪽에는 전주가 높게 서 있으며, 멀리 앞쪽에는 산이 보이는데 이 산은 만산동에 있는 천봉산의 동쪽 자락이다. 좌측에는 건물은 보이지 않으나 우측에는 일본식 게시판 등 여러 시설이 도로에 접해 있다.
이곳은 옛 상주 군청이 있었던 서성동 55번지 일대로서 상주 진영(鎭營) 터이다. 도로 경계에는 토석 담장을 높이 쌓고, 협문을 만들었다. 담장 안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는데 수목 사이로 보이는 팔작지붕의 한옥은 진영의 집사청(執事廳)으로 보인다. 1830년경 제작된 ‘상주 읍성도’에는 읍성 밖 북쪽에 상주 진영을 읍성과 함께 그렸다. 이 지도에는 통인청 앞쪽 담장 옆에 큰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사진에 있는 나무가 그 나무인듯하다.
사진 촬영 시기를 유추해 보면 도로에 전주가 서 있고, 상주 군청이 건립되기 이전의 전경이다. 상주에는 1924년 6월 11일 송전이 개시되었고, 군청은 1926년 9월 15일 낙성되었으므로 1924년에서 1926년 사이의 서정통 전경이다.
상주 진영은 신라 때 처음 군주(軍主)를 두고 총괄하다가 고려 시대에는 참군(參軍), 사록(司錄), 목사(牧使), 판관(判官)의 직(職)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제도는 답습되어 오다가 참군, 사록을 폐지하고 교수(敎授)를 두었으며, 중엽에는 교수를 폐하고 문무(文武) 제독(提督)을 두었다. 그 뒤에는 제독을 폐하고 영장(營將)을 두었다가 1895년(고종 32)에 폐하였다. <사진 : 상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