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충절의 표상(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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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의사단은 임진왜란 당시 1592년 4월 25일 북천 전투에서 순국한 조선 중앙군 순변사 이일의 종사관인 윤섬, 이경류, 박호 3충신과 의병장인 김준신, 김일, 2의사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연혁을 보면 조선 영조 때인 1738년에 임란 북천 전투가 있었던 자산(紫山)에 증연사(甑淵祠)를 처음 세웠다. 그 후 1741년에 국법으로 사당을 금하면서 훼철되었다가 1742년에는 경절단(景節檀)이란 이름을 바꾸었고, 정조 때인 1792년에는 어필(御筆)로 충신의사단(忠臣義士壇)이란 다섯 자를 받아 비석에 새겨서 단(壇)의 왼쪽에 세우고 각(閣)을 세웠다. 이때부터 충의단(忠義壇)으로 이름을 줄여서 불렀고, 이졸단(吏卒壇)과 장사단(將士壇)을 만든 것으로 보이며, 1793년 4월에는 김일 의사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이때의 위치는 무양동 162, 163번지이다. 1986년 10월 도로 개설로 인해 그 이듬해에 연원동 산 140-2번지에 비를 이건한 후 사당과 강당을 중건하였고, 원래의 위치 옆에 조성된 소공원에 이건 연혁을 알리는 비를 세웠다. 지금은 ‘충신의사단비’가 지방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진은 ‘대정원년(大正元年)’의 기록으로 보아 1912년의 충의단 전경이다. 충의단 뒤쪽으로 자산과 천봉산, 좌측으로는 노음산이 멀리 보이고, 우측에는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논갈이를 마친 모습이다. 주변보다 높은 지반에 토석 담장으로 둘러진 일곽 안에 북쪽의 사당과 그 앞쪽에 강당, 고직사가 배치되어 있다.
정면의 솟을대문을 통해 출입하고, 사당에는 내삼문을 두었다. 사당은 무양동 163번지로서 강당 경역보다는 더 높은 지반으로 맞배집이 2채가 있으며, 전면 우측에는 소나무 2그루가 서있다. 강당과 고직사는 무양동 162번지로서 팔작집으로 강당은 오른쪽에는 익사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살림집으로 이용되었던 같다.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