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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의 평지 대가람(大伽藍)(21)

기사입력 19-03-23 09:20 | 최종수정 19-03-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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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탑 면석 3점과 갑석 1점의 잔결(殘缺)로서 사창이라 불리던 남성동 9-6에 있었다. 잔결은 1/4정도의 갑석과 면석인데 면석에는 탱주를 새겼다. 이 갑석 크기로 탑 크기를 유추해본다면 상당히 큰 규모의 탑이다. 단을 막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탑 부재를 수습하여 안치한 모습이다.

 

 그 뒤쪽 초가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중년 여인이 빨래를 열고 조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전형적 농촌풍경을 보여준다.

  초가 돌담에는 호박덩굴이 무성하게 덮여있고, 미루나무와 아카시아 나무도 몇 그루 보인다. 시내에서는 막돌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서 이 돌담은 석탑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측에는 큰 이엉 가리가 있고 그 위에는 커다란 박이 열려있는 것으로 보아 1918년 8월정도 촬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1980년 답사하였을 때는 단칸의 ‘용화전’이고, 그 안에는 ‘천인상’ 2구를 안치하여 기도처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잔결은 1982년 남산공원에 새 보호각을 건립하여 이전하고 옛 보호각은 철거하였다. 그 후 2007년 석탑 잔결과 창건기는 상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석탑의 유래는 ‘용화전 창건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신라, 고려 때 작은 암자가 왕산의 서남쪽 수십 미터 거리에 있었는데 ’만석‘이라고 하였다. 그 곳은 지금 폐허가 된 터, 즉 서성내의 도창지이다. 지금 도창은 없고 창고 하나만 있다. 절이 폐허가 된 후부터 2구의 석불이 창고의 남쪽 뜰에 세워져 있었다... 본 동민이 그 창고의 재료와 기와를 사서 부역으로 공사를 하여 옛터에 한 칸의 전각을 짓고 용화전이라 하고, 2구의 불상을 전각의 중앙 남쪽 벽에 모셨다’라고 한다.


  지금 ‘천인상’ 2점은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상주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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