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6.25 한국전쟁, 상주 수복 (10)

기사입력 18-08-01 18:49 | 최종수정 18-08-0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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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하면서 현재까지 정전협정 조인에 의해 휴전 중이다.


정전 후 65년이 된 금년 4월 27일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금년 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달 중에는 12일 싱가포르의 ‘북미정상회담’과 14일 판문점의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등 한반도 운명이 담긴 역사적 회동이 이어져 있다.

 상주 사람이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실제의 기간은 북한군이 조령과 이화령을 넘어서 문경과 함창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와 갈령을 넘어 화령지역에서 벌어진 전투가 시작되면서 부터라고 하겠다.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화령장 전투가 1950년 7월 17일부터 25일까지 9일간의 지연전이 펼쳐졌다. 이 지연전으로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는 성과를 남기면서 크고 작은 전투가 상주 일대에서 있었다. 그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철수가 시작되었으며, 국군의 소탕전이 끝나고 9월 27일까지 2개월 넘는 기간에 상주 전 지역에는 전화에 휩싸였고 상주 사람이 전쟁을 직접 겪은 기간이라 하겠다. 이때 전쟁 피해는 주택 2,546동으로서 읍내에만 1,036동이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는 1,658명에 달했다.

 상주에서의 한국전쟁 사진은 잘 발견되지 않는다. 이 사진은 상주가 수복되면서 1950년 9월 27일 상주에서 북으로 진격하는 유엔군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주민들로 블로그에 소개된 것이다. 일부 자료에서는 이 사진을 경인가도에서 국군의 서울수복 환영하는 군중으로 소개된 곳도 있다.


배경 위치는 주변 지형으로 보아 상주의 경우 유사한 지형은 계산동 상산전자고등학교 서쪽의 도로변이라 생각된다. 사진의 군중 내에는 어린애와 여자들만 있고, 도로 중앙에서 만세를 부르는 듯한 모습의 남자는 한명만 있을 뿐이다. 이때 남자들은 전장에 나가고 남은 남자는 강제징집으로 인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은 이동하는 도로의 차량 위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며, 군중의 복식은 흑백 사진이라 판단은 어려우나 대부분 흰색 계통의 치마, 저고리를 입었고, 젊은 몇몇은 검정색 계통의 채색 치마를 입었다. 전쟁 중이라는 상황에 맞지 않게 군중의 표정이 밝은 편이며, 특히 어릴수록 표정이 밝게 나타난다. 손에는 깃발을 들고 흔드는 모습인데 어떤 깃발인지를 알 수 없다.


동일한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면 배부된 태극기로 유엔군 환영을 위해 동원된 군중의 느낌이 든다. 도로 옆 낮은 언덕 위에는 수수 같은 키 높은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언덕 위에는 가로수 같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우측 산자락 밑에 초가집 3채가 보이며, 그 집 뒤로는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는 전통적인 농촌의 풍경이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kimseogk>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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