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중심이 된 상주읍성 서문【 5 】
본문
그림엽서에 인쇄된 사진으로서 상주읍성 서문 전경이다. 서문 이름은 「진상문(鎭商門), 읍로문(挹露門)」라고 하였다. 지금의 중앙로와 상산로가 교차되는 지점으로서 선거 때만 되면 입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서문 사거리 중앙 위치이다. 이 사진은 1909년에서 1912년 사이에 상주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상주경찰서 방향으로 촬영한 것이다.
성벽 육축부에는 이끼 등 지의류가 검게 붙어 있어 관리가 잘 안되고, 노후하여 보인다. 성문으로 진입하는 좁은 도로가 조성되어 있고, 그 우측 옆에 초가, 반대 방향에는 곡식류의 식물이 어느 정도 자란 모습이 보인다. 앞쪽의 도로 옆에 보이는 수로 형상은 적으로부터 공격을 지연시켰던 읍성의 해자(moat)로 추측된다. 사진 촬영 당시의 지적도와 사진을 비교해 보면 초가의 위치가 도로 반대쪽으로서 필름이 뒤집혀 현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성문은 1831년 오치성 목사가 재임할 때 건립하였다. 1870년경 민치서 목사가 재임할 때에는 새로 중수를 하고 문 이름을 「진상문(鎭商門)」이라 하였는데 이때에 홍예(arch)도 수리를 하였다. 그 이후에는 수리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민치서 목사가 마지막으로 수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홍예 부분은 성문 양벽 육축 상부에 모서리를 경사지게 깎은 석재 2단을 내어 쌓고 그 위에 수평재 2개를 서로 맞대어 얻었다. 수평재는 가장자리부터 중앙부로 경사지게 깎아 전체 모양이 보기가 어색한 홍예 형태를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는 홍예와 같이 상부의 하중을 양쪽 벽에 분산시키지 못하고 중앙으로 처지게 되는 구조로서 휨 모멘트(bending moment)에 대한 역학적으로 취약한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후기 지방에서 홍예를 만들어 수리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열악한 재정에서 궁여지책으로 고안된 보수공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으로 성문의 규모를 추측해보면 높이 11m, 문루 38㎡정도이다. 이 성문은 남문과 같은 높이로서「서문루(西門樓)」로도 불러졌으며, 철거되기 전까지 시인묵객이 문루에 올라가 진영과 어령수 등 풍경을 배경으로 시(詩)를 지었다.
입구에는 성문이 달려 있고 성문에는 방문(榜文)을 붙였던 흔적이 있으며, 입구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 2명이 서있다. 문루에는 전돌을 쌓아 만든 새 여장과 석축의 옛 여장이 함께 남아 있다. 석축 여장에는 활이나 총으로 성 밖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총안(銃眼)이 남아 있어 고풍스러운 옛 읍성의 문루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 상주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