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조선불교의 자랑, 외남 지사리전탑 (8)

기사입력 18-08-01 18:44 | 최종수정 18-08-0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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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부처님 오신 날’에 앞서 행사 유래와 불교 대표 유적이 동아일보에 보도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부처님 오신 날’에 고려 공민왕 원년, 국령(國令)으로 거리에 오색등을 달아 관등회(觀燈會)를 열게 하고, 궁중에서는 도사(導師) 백 명을 청하여 공양과 설법을 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때까지도 이날에는 등과 잉어를 달았으며, 새 옷을 입고 느티떡을 만들어 먹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경주 ‘불국사’와 함께 상주 ‘지사리 석탑’이 조선불교의 자랑으로 소개되었다.

  이 탑은 외남면 지사리(상병리) 655번지에 있었다. 이 사진은 1916년 ‘조선고적도보’에 실렸으며, 희귀한 석심회피(石心灰皮), 라마(lama)탑으로 알려져 학계의 관심이 높았었다.


조선총독부의 자료에 의하면 명칭은 ‘지사리전탑(芝沙里塼塔)’으로서 안산암 판석으로 쌓았고, 초층 남쪽 면에 감실구를 둔 잔존 6층탑이다. 높이는 25자, 바닥 지름이 8자인데 1917년 5월 23일 해 뜰 무렵에 붕괴되었다고 한다.


붕괴 원인은 불명의 일본인과 조선인이 붕괴시켰다고 하는데 탑의 희귀성으로 인해 학자들과 상주헌병대의 조사가 여러 번 있었으나 붕괴시킨 도굴범은 잡지 못했다. 그때 탑 복원을 위한 비용이 108원이나 소요되어 복원을 이루지 못하고 잔존 부분의 설계도와 초층부만 남아 있었다. 지금은 그 위치가 농지로 개간되면서 지형이 변하고 탑에 사용된 판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 없다. 국가기록원에서는 이 설계도를 3D로 복원하여 기록정보 콘텐츠로만 보여주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당시 자료에 의해 탑의 형상과 규모를 유추해 보면 방형의 8개 치석재 기단을 설치한 후 그 위에 두께가 있는 판석을 1~2단으로 쌓았다.


 탑신은 부정형의 얇은 판석을 점토를 이용해 쌓아 올리고, 남쪽에는 감실구를 두었다. 탑신 축조는 기단 위 중앙에 통나무 심봉(心棒)을 세우고 그 둘레에 방형으로 판석을 쌓았으며, 판석과 판석 사이에는 점토를 채우고 옥개부는 내쌓기와 들여쌓기를 하여 만들었다.


 표면에는 석회 바르기로 마감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석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잔존 크기는 탑신 사방의 길이가 4.4~4.8자이며, 높이는 기단 1.1, 탑신 3.6, 옥개부 1.0자이다.

<사진 : 조선고적도보>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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