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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상주 최초 유치원 (9)

기사입력 18-08-01 18:46 | 최종수정 18-08-0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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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치원은 1913년 서울의 ‘경성유치원’이 처음이다. 유치원 운영에 관한 법적인 제도가 마련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의 ‘조선교육령’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육령은 1949년에 ‘교육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운용이 되었다.

상주에는 ‘대한예수교상주읍장로교회’에서 안태석이 대표로 1949년 5월 1일 경상북도지사의 설립 인가를 받아 5월 5일 서성동 10번지 교회 경내에 개원한 ‘상주유치원’이 처음이다. 이곳은 지금의 ‘상주시민교회’이다. 유아의 교육과 보건, 보육 등이 설립 목적이며, 시설은 목조 기와집 교실 1동 78평과 보육장 150평이었다. 이 사진은 개원하면서 촬영한 기념사진으로 개원 날은 ‘어린이날’로서 이날에 맞추어 개원을 한듯하다.

건물은 그 당시 일본식 학교나 창고 등 실내 면적이 비교적 큰 곳에 유행하던 목조 수평비늘판벽 외벽 건물이다. 이러한 형식은 외벽이 항상 풍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콜타르(Coal tar)라는 방수도료를 칠하여 외관은 검은색 건물로 보였다.


이 건물은 외벽에 누름대를 성글게 설치하여 비늘판의 비틀림은 심하나 옹이 자국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어 이때까지는 콜타르칠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지붕을 덮은 재료 두께가 얇은 것을 보면 기와 보다는 함석 잇기를 한 것으로 보이고, 우측 출입구 좌측에는 ‘상주유치원’ 현판을 크게 걸었다. 교실 왼쪽 지붕 뒤로는 교회 십자가가 멀리 보이고 있어 뒤쪽으로 교회 건물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앙에는 교사로 보이는 남녀 5명과 88여명의 유아, 옆과 뒤쪽으로는 부모들이 함께 촬영되었다. 원생들은 키의 편차가 크고 단발머리의 치마저고리 여아와 빡빡머리의 바지와 반팔 저고리를 입은 남아가 대부분이고, 남아 중에는 긴 머리의 남아도 몇몇 보이는데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유아 교육은 초등학교를 입학 전에 유아원과 유치원 과정을 모두 마친다. 그러나 이때에는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교육보다는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때로서 유치원을 다닐 수 있는 여건은 부모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던 시기였다.

원훈은 ‘착하게, 아름답게, 씩씩하게’이며, 입학 자격은 상주읍 관내 거주자하는 자녀로서 만 4세에서 초등학교 취학 전의 유아가 대상이었다. 매년 3월 1일부터 다음해 2월 28일까지 2년제로서 정원은 100명 이하였다. 이 유치원은 2001년까지 52회 1,524명을 배출하고 휴원을 하다가 2003년 2월 19일 폐원하였다.

<사진 : 김재수님 소장 자료>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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