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공성면민이 설립한 중학교, 용운중학교 (98)

기사입력 25-01-18 08:53 | 최종수정 25-01-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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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용운중학교-전경(김재수).jpg

한국전쟁 이전에 시내 중학교는 상주와 남산중학교가 개교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국가 재건이 시작되면서 면(面) 지역에 중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한다. 1952년에는 공성면의 용운과 화서면의 화령, 1954년에는 모동면의 중모와 화북면의 화북, 1955년 청리면의 청리와 낙동면의 장동 중학교가 차례로 설립이 된다.

 

이때 학교 설립은 전쟁 이후 피폐해진 국가 경제 상황으로 국가에서 지방에 교육 사업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고,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치르면서 먹는 것보다 교육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강조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면 지역에는 국민학교 졸업 후 상급학교로 진학할 중학교가 없어 지역 유지들이 스스로 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청리와 공성 지역은 철도 역세권에 의해 발전한 김천에 인접해 있고, 경북선 철도가 일찍 개통되어 다른 곳보다는 근대화 인식이 빨라 중학교 설립 열망도 일찍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 여건 상황에 따라 용운중학교(龍雲中學校)가 지역 유지에 의해 설립이 시작되었다. 1952년 1월 25일 김삼업(金三業) 씨를 중심으로 한 15명이 모여 ‘공성면 중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하고, 면민 대회를 거쳐 설립하기로 한다. 2월 6일에는 설립을 위한 280여 명이 모여 첫 면민 대회를 개최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얻지 못하였고, 25일 다시 250여 명이 모여 면민 대회를 열었으나 역시 결론을 도출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학교 설립 의지가 있는 180여 명이 ‘용운중학교’로 설립하기로 합의되어 추진되었다. 설립 재원은 석희관, 김팔출, 이종은 씨의 토지(과수원) 9,533평과 이효준, 김동언, 서주석, 어행선 씨의 정미소 등 부동산 현물 출자로 추진되었다. 3월 10일에는 회의를 열어 재단과 학교 설립에 대한 제반 절차를 마쳤다.

 

5월 1일에는 문교부 장관의 ‘재단법인 용운의숙(龍雲義塾)’ 설립 허가를 득한 후 8월 5일에는 ‘용운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학교 교사와 운동장은 면민이 총동원되어 터를 닦았으며, 9월 1일 교사를 준공하여 9월 15일 첫 입학을 맞았다. 이때 재단 이사장과 교장은 석희관 씨였으며, 1953년 3월 25일 11명이 첫 졸업을 했다.

 

이 사진은 학교 설립 10년 후인 1962년의 학교 전경이다. 김천 쪽에서 서산 방향으로 촬영한 당시 면민이 함께 세웠던 학교의 전경으로 현재의 위치는 공성면 산현리 873번지 일대이다. <사진 : 용운중학교 졸업앨범>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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