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악산 천년고찰, 남장사 소풍(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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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불이문(不二門) 앞에서 찍은 봄 소풍 기념사진이다. 사진에는 ‘로악산 남장사 언족 기념 4283.4’, 뒷면에는 ‘申相均 全盛時代 敎育者 申相均의 態度를 左視하라’ 기록해 놓았다. 문구의 내용을 볼 때 ‘언족’은 소풍의 다른 말인 원족(遠足)을 오기한 것이다. 뒷면에 있는 글의 뜻은 사진 인물 중에서 검은색 안경을 쓰고 특색있는 복장과 자세를 취하면서 왼쪽에 서 있는 교사를 지칭하는 문구로 보인다. 촬영 시기는 한국전쟁 발발 약 두 달 전인 1950년 4월 봄이다.
불이문은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하며, 사찰에서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의 이름이다. 뒤쪽에 보광전(普光殿) 편액이 보이며, 토석 담장을 둘린 본당의 경역에 들어가면서 높은 사주문의 불이문을 두고 양쪽으로 2~3칸의 문간채를 연결했다. 이 문은 지금 없어지고, 편액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사진에는 교사로 보이는 여러 명과 검은색과 흰색 교복을 입은 중학생 정도의 학생이 함께 불이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촬영했다. 교사와 학생 여러 명이 손에 꽃을 들고 있는데 이 꽃은 남장사 주변에서 이때쯤 많이 피는 진달래로 보인다.
시내에서 도보로 갈 수 있던 곳이 많지 않았던 이 시기에 남장사 소풍은 시내에서 도보 이동이 가능하여 많이 이용되었던 것 같다. 이동하면서 연원동의 수석정을 거치기도 했고, 당시에 국민학생부터 고등학생, 남녀노소 등 모두 애용되던 단골 소풍지로서 수석정, 일주문, 불이문, 보광전, 극락보전 등 여러 곳에서 촬영한 사진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은 불이문 자리에는 설법전(說法殿)이 들어섰으며, 설법전 1층 가운데 칸을 통해 보광전으로 들어간다.
남장사는 연원동에 있었던 장백사(長栢寺)가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장백사에서는 850년에 입적한 승려 혜소(慧昭)가 804년 당나라 유학을 시작해 26년간 활동하다가 830년에 귀국한 후 신도와 제자들에게 당나라에서 배워온 선법(禪法)과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했다.
이러한 내용은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탑비’에 남아 있다. 범패는 선종의 수행 방법의 하나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 터에는 석탑 옥개석만 민가 마당 한 편에 남아 있다.
1186년에는 절을 남장동으로 옮겨 남장사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중건, 중수를 거쳐 유지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사진 : 상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