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아내(54) - 바다

기사입력 18-10-01 13:10 | 최종수정 18-10-0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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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54)

-바다

 

출렁이는 것은 그의 직업이라 생각했다. 숭어 몇 마리 키우는 건 당연한 일, 굴과 미역을 챙겨 도망치던 날도 아무 말 없이 출렁이고 있었으니.

 

오늘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빈 슬픔이나 뭉개고 앉아 편지를 쓴다. 바다 가까이 있었지만 한 번도 바다가 되지 못한 청춘. 바다의 등 쪽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어. 생각 없는 말들이 풍덩풍덩 빠지던 날은 석양에 묶인 당신의 발목이 서럽고 어두웠지. 바다는 늘 그 곳에 그냥 출렁이는 줄만 알았어. 몸살을 앓던 바다가 아무도 모르게 눈물의 MRI를 찍던 날도 나는 새까만 시를 쓰고 있었어. 미안, 바다가 아픈 것이 말이 되냐며! 바다가 출렁이는 건 푸른 눈물이 너무 오래 고여 있기 때문인 걸, ‘출렁이 아프다는 말인 것을, 견디는 자가 뭍으로 보내는 방언인줄 새까맣게 몰랐었어,

 

 

[시작 메모] 무단횡단 하는 나를 만나 급브레이크 밟으며 차를 세우고 애타게 불러주던 당신이 있었습니다. 뒤에는 키 큰 시내버스가 달려오는데, 도로 한 복판에서 겁 없이 차를 세우던 당신에게 어디서 차를 세우고 난리냐?’며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빨리 가던 길 가라고 손짓을 했었습니다.

 

바다를 떠나왔다고 울어대는 새들이 구겨진 원고지 사이에서 새우깡을 먹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 누워있는 빈 소주병은 당신이 마신 것인지 바다 새가 마신 것인지 궁금했었습니다. 허름해 보이지만 깡이 있는 새우깡은 소주 안주도 되고 슬픔의 안주로도 충분합니다. 그 날, 빈 소주병 위로 훨훨 날아가는 바다 새와 청춘을 보았습니다. 이십대에 이곳으로 온 바다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지. 바다 새가 바다를, 바다가 바다 새를 도망가고 싶던 날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오늘도 바다 새는 울어대고 바다는 또 출렁입니다.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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