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아내(36) - 여보, 미안해

기사입력 18-09-28 17:50 | 최종수정 18-09-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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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36)

-여보, 미안해.

 

 아내와 헤어졌다. 늘 창밖의 여자였던 아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대구 만촌 네거리에서 그녀와 헤어졌다. 16년간 함께 살아온 그녀가 바닥 위에 흩어진 비빔밥이 되었다. 길은 늘 지독하고 깊고 외로운 속성이 있다. 내일은 출근해야한다며 파출소로 경찰서로 법적 수속 먼저 밟는 내가 미웠다. 아내와 헤어지는데 갈비뼈와 무릎 뼈가 나보다 더 서러워한다. 내가 더 깨지고 그대가 덜 깨져야했었는데.

 

 외로운 그대, 발인하기 전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고 폐차장에 갔다. 미안하다. 사랑의 결론은 늘 미안하고 아픈 눈물. 차문을 열고 과거로 가니 눈물 강이 길다. 16, 515㎞…. 함께 달려온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속력이 되는데 함께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니 골목골목 꽉 찬 그리움의 광속이 우수수 떨어지네. 거리를 속력으로 나누면 어쩔 수 없는 세월이 되네. 강물이 차 안을 지나가네. 그대 무릎에 자판기 커피 쏟는 일도 이제는 다 글렀네. 내 사랑 로시난테. 경북 14618 소나타 투, 여보, 미안해. 목욕도 자주 시켜주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한 번 못하고.

 

 한 남자가 아내와 헤어지며 훌쩍이는 데 멍든 눈이 내린다. 여보, 미안해

 

[시작 메모] 지금은 거리에서 만나기 힘든 소나타 투를 타던 기억이 납니다. 차도 오래타면 대화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줍니다. 말이 통합니다. 아내처럼 편안해 집니다. 어느 겨울 날, 영업용 택시와 부딪혔는데 어디선가 달려온 노조 위원장과 각종 증인, 출동한 정부 관료 모두가 제 잘못이라고 했었습니다. 아내와 헤어진다면 당연히 제 잘못이겠지요.

 

폐차장으로 가는 아내를 배웅하며 안타까웠던 그 날이 자꾸 생각납니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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