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아내(43) - 그저 우리는

기사입력 18-09-28 18:13 | 최종수정 18-09-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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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43)

-그저 우리는

 

그 해 그 물새들 날아와

그 해 그 자리로 흘러갑니다. 울컥

그 해 그 얼굴 생각나는 12

 

그대의 겨울 강에

그 해 그 물새의 발자국 시려옵니다.

 

자꾸 약해지고 흔들리는 마음이 아파

그리운 얼굴 더 애잔해지는 겨울

 

어쩌지요?

그대 이름 생각나지 않는 그날이 오면.

 

인정사정없이 세월의 발자국 지우는 강물

그저 사랑이면 그만이던 우리를

그저 당신이면 그만이던 우리를

 

[시작 메모] 달뜨고 바람 부는 날은 북천에 나가 청둥오리 가족과 대화를 합니다. 오리의 인문학 강의도 들어줍니다. 억새풀 사이로 숨어드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강물은 이내 지우기 시작합니다. 흔들리는 달빛도 강의를 시작합니다. 나이 탓인지 특별한 교훈도 없는데 두 눈이 뜨겁습니다. 발자국 지우는 일도 반짝일 수 있다는 말씀하시며 더 천천히 걸어가라 일러줍니다.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흔들흔들 건들건들 살아가라 일러줍니다.

 

그저 사랑이면 그만인 우리는, 그저 당신이면 그만인 우리는 청둥오리처럼 빈 억새풀 사이 오래된 추억 흔들리는 겨울 길을 더 천천히 더 다정하게 걸어가고자 합니다. 겁나는 일이지만 지워지더라도, 그저 당신이면 그만이던 제가 혹시 내일 그대 이름을 모르더라도.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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