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아내(44) - 고물 리어카

기사입력 18-09-28 18:17 | 최종수정 18-09-2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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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44)

-고물 리어카

 

퇴근 길, 등 굽은 할머니 싣고 가는 허공의 무게를 읽다가 나는 허공에 얼룩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일에는 오랜 내공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도 엎드려 짐을 싣던 리어카가 있었다. 늙은 철사로 온 몸을 얽은 속 깊은 고물 리어카가 덜커덩거리는 노래를 부르며 들로 나가는 날, 제일 먼저 타는 손님은 바람을 닮은 막내였고 그 다음은 삽과 괭이였다. 짐을 내리면 그 자리에 들어서던 속 깊은 내공, 아무리 내려도 다시 쌓이던 짐. 온갖 풍상 짐 싣는 일이 평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허공에는 늘 물기가 고여 있었다. 허공의 무게 가벼워지는 날 기다리며 종일 짐을 옮기고 돌아오는 길, 고물 리어카는 한 뼘 더 자란 걱정을 덜컹거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제발 좀 비켜나세요!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집 리어카는 한 번도 짐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무리 무거워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일이 없는 날은 얼룩진 허공이라도 가득 싣고 살아야했던. 한 해 동안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발 씻고 방으로 가지도 못하고 헛간 처마 아래로 가 늘 서서 자야했던 우리 집 보물 1, 당신

 

[시작 메모] 추운 겨울, 처마 아래 서 있던 리어카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도 리어카가 있었습니다. 처음 우리 집으로 올 때는 나무판자 빛깔이 황금색이었지만 몇 년이 지나며 회색빛이 되고 갈라지고 찢어져 철사로 얽어맨 고물리어카가 되어갔습니다.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리어카는 잠자던 곳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헛간의 처마 아래 서서 잠을 잤기 때문에 편안하게 잠드는 날은 하루도 없었겠지요.

 

저물 무렵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를 만납니다. 그 속도와 짐의 크기가 할머니의 삶을 집작하게 합니다. 리어카도 할머니도 좀 쉬어야 하는데 엎드려 종일 짐을 옮기던 저 리어카가 서서 자는 것은 아닌지 혹은 집도 내리지 못하고 주무시는 것은 아닌지. 할머니는 굽은 허리 펴고 주무시는지 미안하고 궁금해집니다. 무술년의 술()에는 정연하여 아름답다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무술년 새해에는 할머니와 리어카 모두 편안하고 좋은 일 아름다운 일만 가득하기를 빌어봅니다. 아울러 당신의 짐도 좀 가벼워지기를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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