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32) - 모자라는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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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32)
-모자라는 모자
모자에
모자라고 이름 새겼다
모자에 새긴 모자라는 두 글자
모자라는 모자의 이름도 되고
엄마와 아들이라는
나는 엄마의 아들이라는 눈물도 되고
스스로 삶의 근기 모자란다는 고해성사
모자라는 모자
울 엄마는 속도 참 좋으시다. 사진 곁에
찌그러진 그 모자 두어도 슬며시 웃으신다.
우리 아들 모자라며 저승에서도
모자라는 모자 쓰고 동네 한 바퀴 도실 것이다 .
그 아들에 그 엄마다.
너무 모자라는 모자
[시작 메모] 모자를 사서 선한 얼굴의 사장님이 일하시는 ‘상주교복사’에 들러 모자라고 새겨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 좀 이상한 사람이네.’하는 표정으로 사장님은 ‘모자’라고 새겨주셨습니다. 아내는 그 옆에서 모자라는 남편의 기괴한 행동을 웃으며 지켜보았습니다. 이상한 남편을 두고 도망가지 않는 아내도 모자라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중궁암 가는 길에도 모자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갑니다. 중궁암 부처님도 제가 모자라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알고 계실 겁니다. 여행 중에도 그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 모자를 엄마 사진 곁에 둡니다. 온 세상을 모자라는 모자를 쓰고 돌아다닌 아들을 보고 우리 엄마는 빙그레 웃으십니다. 아내도 그 모자를 보고 웃고 있으니 그 모자는 모자라는 것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