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아내(14) - 너추리

기사입력 18-09-28 16:56 | 최종수정 18-09-28 16:56

본문

아내(14)

-너추리

 

상주시 만산동 너추리로 가

가을 좀 늦추고 싶다.

 

사랑을 참아 낸 지난여름 눈물이

단풍으로 물드는 소리

 

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이제 기다리지 않겠다며

늙은 강아지풀이 빈 가슴을 열고 서성거린다.

 

바깥너추리 언덕에서 억새풀로 흔들리던 가을은

안너추리 골목으로 들어가 늦은 과꽃으로 핀다.

 

바람이 더 천천히 불 것이다.

바람이 더 천천히 울 것이다.

 

바람 부는 날은 두 손 잡은 너추리로 가

굳이 먼 길로 돌아가는 가을이 되고 싶다.

 

[시작 노트] 억새풀이 떠나는 사람의 옷자락처럼 흔들립니다. 백발성성한 노인입니다. 영화나 무협 소설에서 도인들이 흰색을 입는 것은 흔들리는 억새풀을 입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새풀 도인은 봄여름 지나왔으니 비바람 다 견뎌왔으니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고 고민하는지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네 욕심과 허세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억새풀에 강아지풀을 섞어 빈 콜라병에 꼽아봅니다. 힘들게 살아온 억새풀과 강아지풀이 꿀꺽꿀꺽 빈 콜라를 마십니다.

상주에는 안너추리와 바깥 너추리가 있습니다. 안이 바쁘게 움직이고 바깥이 느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왕 늦추어 살꺼면 안과 밖 모두가 두 손 잡고 천천히 살아가라며 선인들이 천봉산 자락에 그 이름을 붙여놓았습니다. 차를 세우고 너추리 억새풀 바라보며 더 천천히 기다리는 당신에게 이미 지각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너추리에는 흔들리는 억새풀이 더 아름답습니다.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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