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아내(15) 양말 신고 그냥 자기

기사입력 18-09-28 16:58 | 최종수정 18-09-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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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15)

-양말 신고 그냥 자기

 

후배 곽 선생이 무좀약을 먹었더니

잠이 온다기에

어지간하거든 무좀과 함께 살아라했다.

 

스며들어 발끝까지 참아낸 사랑, 때로는

신발 벗고 식당 들어가는 일도 힘들였지만.

양말 위 벅벅 긁던 그 싸움 감추지 못했지만

살만한 곳이라며 찾아온 너, 내보내지 못하고

어제는 텃밭 한 평 슬그머니 내어주었다.

 

내가 가려운 만큼 너도 가려웠겠지

네가 가여운 만큼 나도 가여웠겠지

어쩔 수 없는 미안함 서로 받아들이며

 

오늘은

양말 신고 그냥 자기로 했다.

함께 살기로 했다.

 

[시작 노트] 당신에게 스며든 지 어언 수십 년, 저는 아직 당신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망설인 적은 있었지만 당신처럼 좋은 터전을 두고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캄캄한 구두 속의 제 삶이 특별한 무게나 빛깔을 내는 일은 너무 큰 꿈이었겠지요. 살다보니 그냥 무좀이려니 하며 저도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물론 당신에게 기대어 가려움 이상의 참기 힘든 고통을 주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이 번 가을에는 당신과 막걸리 한잔 앞에 두고 인연에 대하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헤어지면 그만인 사이입니다. 돌아서면 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살고 함께 잠드는 특별한 인연입니다. 어지간하면 참고 그냥 살아주기 바랍니다. 며칠 전 일회용 무좀약 들고 설치던 당신 생각하면 아이구, 오금이 저립니다. 당신은 참 착하고 고마운 땅입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무좀 올림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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