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4) - 겨울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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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4)
-겨울 안개
간이역에 내리는 겨울 안개를 보았다. 이제는 마중 나올 당신이 없다며 청춘을 서성거리던 짐승 한 마리 목 놓아 울고 있었다. 겨울이 혼자 한 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약속이 없어도 사랑을 기다리던 겨울 안개는 한 쪽 귀가 늘어져 얼고 있는 시냇물에 닿아있었다. 잎이 없는 겨울나무가 기다려주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던 안개의 두 손을 잡아주었다. 고생 많이 했다며, 이제 눈물 그만 흘리라며…. 아직도 안개의 젖을 꿀꺽꿀꺽 마시는 시냇물이 얼음 아래에서 졸졸거리고 있었다. 목이 말랐다.
안개는 값이 올라 잠시 멈추었던 담배를 하얗게 연결하는 다리. 나는 안개 한 개비를 훔쳐 피우며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슬픔은 안개의 다리를 천천히 건너가는 도둑이었다. 안개의 시린 어깨를 훔쳐 고향 뒷산에 묻어야하는 도둑. 나는 안개가 쓸쓸한 겨울의 아내였음을 처음 알았다. 미안했다. 미안하고 아팠다. 오는 길, 갈 곳 모르는 안개를 내려주던 기차가 이제는 내려줄 물건 하나 없다는 듯 다시는 아무 연락 없을 거라는 듯 초사흘 달 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목이 말랐다.
[시작 노트] 대한 지난 섣달 초사흘, 고향 가는 길에는 겨울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겨울나무와 들판과 시내가 안개의 젖을 물고 새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개 속을 걸어가는 일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 안개를 추억처럼 묻어야 하는 일은 더 힘이 들었습니다. 처음 알았습니다. 안개가 외로운 겨울의 아내였음을. 슬픈 들짐승의 어미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