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3-15

아내(7) - 아무렇지 않은 봄

기사입력 18-09-28 15:43 | 최종수정 18-09-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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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7)

-아무렇지 않은 봄

 

?

 

오래된 책을 넘기는데

당첨 확인 못한 복권 한 장이

물어보지 못한 사랑처럼 우물쭈물 거리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며 빙긋이 웃습니다.

 

유효기간 지난 꿈이었습니다.

유효기간 지나서 아름다운 꿈이었습니다.

버리려다가

오래된 이름 감추듯 얼른 책을 덮습니다.

   

신흥동 동사무소 목련이

작년처럼 피었다가 작년처럼 지는데

서러운 삼월은 저만치 가고, 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봄이라서 눈물이 났습니다.

 

[시작 노트] 북향화라고도 불리는 목련화는 누군가 오 내 사랑 목련화야라고 소리쳐 부를 만큼 환하게 꽃을 피웁니다. 반면 지는 목련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바닥에 내려놓은 꽃잎을 들여다보면 흰 종이에 여러 개의 선과 무늬가 원시 언어로 그려져 검누런 낙엽이 되어 갑니다. 작년처럼 피었다가 작년처럼 지는 일인데 뭐 그리 야단이냐며, 삶에 찌든 그대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꽃 피던 지난날을 벌써 잊으셨는지요?

목련이 올 해는 말을 걸어왔습니다. 목련 꽃잎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적혀있는 눈물의 상형 문자를 읽어봅니다. 잊지 말아야지요. 이 땅의 모든 아내가 한때는 북향화였었다는 사실, 당첨이 거의 확실한 복권이었다는 사실. ? 삼월이 목련처럼 지고 말았습니다.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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