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8) - 비누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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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8)
-비누 꼬리
세면대 위에 향기 좋은 새 비누 올려놓고
꼬리만 남은 비누는 구석으로 밀어놓는다
한 때는 양손과 얼굴 온 몸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챙겨주던 당신이었는데
이제는 피부도 거칠어지고 갈라진 모습으로
아무데나 걸터앉아 버럭버럭 짜증만 내고 있다,
사용하던 물건이라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둘 곳도 마땅하지 않는 저 작은 거구
거품도 잘 나지 않고 향기도 없는
마음만 꽃인 비누의 주검
한때는 비누의 중심이었던 비누 꼬리가
퍼드덕 꼬리를 치며 강으로 간다.
[시작 노트] 난리 법석을 피우던 사람 사이의 관계도 세월이 흐르면 알람시계나 핸드폰의 벨소리 역할을 하는 무심한 관계로 변해 갑니다. 그저 ‘라일락 향기가 좋지요’또는 ‘요즈음은 연산홍이 참 많이 피네요,’라며 봄소식을 겨우 전해주는 사이로 변해갑니다. 이제는 거품도 잘 나지 않는 비누 꼬리를 밀쳐내다가 문득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을 씻을 때에도 거품이 잘 나지 않아 여러 번 문질러야 했으니…. 오늘은 눈물이 되어 골목길을 돌아가는 비누 꼬리를 만나봅니다. 나를 만나봅니다.
금이 가고 색깔이 바래진 비누 꼬리를 오래 바라보다가 이 녀석이 한 때는 비누의 중심에 위치했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비누 꼬리 함부로 버리지 말라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또 버럭 화를 냅니다. 쓸데없는 전화 하지 말고 너는 근무나 똑바로 하라며, 허허.